<?xml version='1.0' encoding='UTF-8'?><?xml-stylesheet href="http://www.blogger.com/styles/atom.css" type="text/css"?><feed xmlns='http://www.w3.org/2005/Atom' xmlns:openSearch='http://a9.com/-/spec/opensearchrss/1.0/' xmlns:georss='http://www.georss.org/georss' xmlns:gd='http://schemas.google.com/g/2005' xmlns:thr='http://purl.org/syndication/thread/1.0'><id>tag:blogger.com,1999:blog-2133109285896903994</id><updated>2012-02-16T06:49:27.454-08:00</updated><title type='text'>Jay's Blog - Introspection</title><subtitle type='html'>An intellectual is someone whose mind watches itself. -Camus</subtitle><link rel='http://schemas.google.com/g/2005#feed' type='application/atom+xml' href='http://jaycho-textcube.blogspot.com/feeds/posts/default'/><link rel='self' type='application/atom+xml' href='http://www.blogger.com/feeds/2133109285896903994/posts/default?max-results=100'/><link rel='alternate' type='text/html' href='http://jaycho-textcube.blogspot.com/'/><link rel='hub' href='http://pubsubhubbub.appspot.com/'/><author><name>Jay</name><email>noreply@blogger.com</email><gd:image rel='http://schemas.google.com/g/2005#thumbnail' width='16' height='16' src='http://img2.blogblog.com/img/b16-rounded.gif'/></author><generator version='7.00' uri='http://www.blogger.com'>Blogger</generator><openSearch:totalResults>3</openSearch:totalResults><openSearch:startIndex>1</openSearch:startIndex><openSearch:itemsPerPage>100</openSearch:itemsPerPage><entry><id>tag:blogger.com,1999:blog-2133109285896903994.post-5588105037028265176</id><published>2010-08-08T20:49:00.000-07:00</published><updated>2011-01-11T04:59:19.674-08:00</updated><title type='text'>soon</title><content type='html'>jaycho.net : coming soon &lt;br /&gt;8/10/2010&lt;br /&gt;&lt;div class="blogger-post-footer"&gt;&lt;img width='1' height='1' src='https://blogger.googleusercontent.com/tracker/2133109285896903994-5588105037028265176?l=jaycho-textcube.blogspot.com' alt='' /&gt;&lt;/div&gt;</content><link rel='replies' type='application/atom+xml' href='http://jaycho-textcube.blogspot.com/feeds/5588105037028265176/comments/default' title='댓글'/><link rel='replies' type='text/html' href='http://jaycho-textcube.blogspot.com/2010/08/soon.html#comment-form' title='0개의 덧글'/><link rel='edit' type='application/atom+xml' href='http://www.blogger.com/feeds/2133109285896903994/posts/default/5588105037028265176'/><link rel='self' type='application/atom+xml' href='http://www.blogger.com/feeds/2133109285896903994/posts/default/5588105037028265176'/><link rel='alternate' type='text/html' href='http://jaycho-textcube.blogspot.com/2010/08/soon.html' title='soon'/><author><name>Jay</name><email>noreply@blogger.com</email><gd:image rel='http://schemas.google.com/g/2005#thumbnail' width='16' height='16' src='http://img2.blogblog.com/img/b16-rounded.gif'/></author><thr:total>0</thr:total></entry><entry><id>tag:blogger.com,1999:blog-2133109285896903994.post-3165593019469738604</id><published>2010-05-23T19:59:00.000-07:00</published><updated>2011-01-11T04:59:19.196-08:00</updated><title type='text'>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- Russell</title><content type='html'>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? &lt;br /&gt;&lt;br /&gt;버트란드 러셀 &lt;br /&gt;&lt;br /&gt;이글은 1927년 3월6일, 전국 비종교인 협회 런던 남부지부 후원하에 배터시&lt;br /&gt;(battersea)읍공화당에서 강연한 내용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‘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?’ 하는 것이다.&lt;br /&gt;먼저, ‘기독교인’ 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 뜻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&lt;br /&gt;좋을 것 같다. 요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말을 대단히 느슨한 의미로 하용하고 &lt;br /&gt;있다. 그런 의미라면 기독교인은 모든 종파나 교리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. &lt;br /&gt;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 말의 적절한 의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. 기독교인이 &lt;br /&gt;아닌 모든 사람들 - 불교인, 유교인, 회교인등 - 은 훌륭한 삶을 살려는 노력을 &lt;br /&gt;하지 않는다는 뜻이 그 속에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. 나는 누구든 저 나름대로 &lt;br /&gt;남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 곧 기독교인이라고는 결코 보지 않는다. &lt;br /&gt;여러분이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먼저 분명한 신념을 어느 정도 &lt;br /&gt;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. 오늘날 이 말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시대 &lt;br /&gt;때만큼이나 그렇게 순수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. 그때만 해도, 누군가 ‘나는 &lt;br /&gt;기독교인이오,’라고 하면 말뜻 그대로 이해되어졌다. 엄청나게 정교화된 교리 &lt;br /&gt;전체를 받아들이며, 교리에 나오는 자구 하나하나까지 확신을 다해 믿는다는 &lt;br /&gt;의미였던 것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기독교인이란 무엇인가? &lt;br /&gt;&lt;br /&gt;오늘날에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. 우리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의미는 다소 막연할 &lt;br /&gt;수밖에 없다. 그러나 누구든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&lt;br /&gt;갖추어야 될 별개의 조항 두 가지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. 첫째는 교리 차원의 &lt;br /&gt;것이다. 즉, 야훼와 영생을 꼭 믿어야 한다. 이 두 가지를 믿지 않으면서 &lt;br /&gt;기독교인을 자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. 두 번째로, 좀더 들어가, &lt;br /&gt;크리스천(기독교인)이란 명칭이 내포하듯 크라이스트(예수 그리스도)에 대한 어떤 &lt;br /&gt;믿음이 있어야 한다. 예를 들면 회교도인들도 신과 영생을 믿고 있지만 스스로를 &lt;br /&gt;기독교인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. 기독교인이라면 최소한 예수가 신이 아니라 &lt;br /&gt;하더라도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정도는 믿을 수 있어야 한다. &lt;br /&gt;만일 여러분이 예수에 대해 그정도도 믿을 생각이 없다면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&lt;br /&gt;할 권리가 없다고 본다. 물론 휘태커의 역서(歷書)나 지리책에서 보듯, &lt;br /&gt;세계 인구를 기독교인과 회교도, 불교도, 배물교도 등으로 나누는 관점도 있긴 &lt;br /&gt;하다.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기독교인들이다. 지리책에서는 우리를 전부 &lt;br /&gt;기독교인에 집어넣고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지리적인 관점이므로 무시해도 좋을 &lt;br /&gt;것이다. 따라서 내가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설명하기 위해선 두 가지 문제를 &lt;br /&gt;받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. 첫째, 나는 왜 야훼와 영생을 믿지 않는가? &lt;br /&gt;둘째, 왜 나는 예수가 대단히 높은 수준의 도덕적 선을 행한 사람이라는 건 &lt;br /&gt;인정하지만 최선(最善), 최현(最賢)의 인간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? &lt;br /&gt;&lt;br /&gt;지난날 비신자들의 성공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나는 기독교에 대하 그처럼 탄력적인 &lt;br /&gt;정의를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. 앞서 말했듯 옛날의 기독교는 훨씬 더 순수한 뜻을 &lt;br /&gt;지니고 있었다. 예를 들어, 지옥에 대한 믿음까지 포함하고 있었다. 영원한 지옥의 &lt;br /&gt;불에 대한 믿음은 극히 최근까지도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조항이었다. 여러분도 &lt;br /&gt;아시다시피 이 나라에서는 추밀원(Privy Council)의 결정으로 이 항목이 핵심적인 &lt;br /&gt;자리에서 밀려났지만 켄터베리 대주교나 요크 대주교는 그 결정에 반대했다. &lt;br /&gt;그러나 이 나라에서 우리의 종교는 의회의 법률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추밀원은 &lt;br /&gt;그들 대주교를 무시할 수 있었고 결국 지옥은 기독교인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&lt;br /&gt;않게 되었다. 그러므로, 나는 기독교인은 반드시 지옥을 믿어야 한다고 우기진 &lt;br /&gt;않을 것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 &lt;br /&gt;&lt;br /&gt;야훼는 존재하는가? &lt;br /&gt;&lt;br /&gt;야훼의 존재를 논하는 것은 아주 중차대한 문제이다. 따라서 내가 이 문제를 정말 &lt;br /&gt;제대로 다루려면 ‘천국’이 올 때까지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붙잡아두어야 할 &lt;br /&gt;것이다. 그땐 내가 이 문제를 다소 약식으로 다루어도 여러분은 날 용서할 수밖에 &lt;br /&gt;없을 테니까. 물론 여러분도 아는 바와 같이, 가톨릭 교회는 야훼의 존재는 순수 &lt;br /&gt;이성에 의해 입증될 수 있다는 교리를 못박아두었다. 다소 기묘한 교리이긴 하지만 &lt;br /&gt;분명히 그들의 교리 중의 하나다. 그들이 이러한 교리를 도입하게 된 것은 한때 &lt;br /&gt;자유 사상가들이, 믿음의 영역에서는 물론 야훼가 존재한다고 알고 있지만 이성만 &lt;br /&gt;가지고 따지자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러저러한 논거들이 &lt;br /&gt;존재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기 때문이다. 그러한 주장과 논거들이 장황하게 &lt;br /&gt;쏟아져 나오자 가톨릭 교회는 중단시켜야겠다고 판단했다. 그렇게 해서 그들은 &lt;br /&gt;야훼의 존재는 순수 이성에 의해 증명될 수 있다고 못박았고, 자신들의 이론도 그 &lt;br /&gt;점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말짓지 않을 수 없었다. 그같은 이론은 물론 셀 &lt;br /&gt;수도 없이 많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만 다뤄보기로 하겠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제 1 원인론 &lt;br /&gt;&lt;br /&gt;아마도 가장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론은 제일 원인론일 것이다(이 이론에서는 &lt;br /&gt;우리가 보는 이 세상 만물에는 모두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의 사슬을 따라 점점 &lt;br /&gt;깊이 들어가다보면 최초의 원인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 제일 마지막의 &lt;br /&gt;원인은 야훼란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.). 이 이론은 오늘날 그다지 높은 &lt;br /&gt;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. 무엇보다도, 원인이란 것 그 자체가 과거와 달리 &lt;br /&gt;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.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원인에 대해 캐들어가고 &lt;br /&gt;있지만 옛날과 같은 활력은 찾아보기 어렵다. 그러나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, 제일 &lt;br /&gt;원인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이론에서 다소라도 타당성을 발견하기란 어렵다. &lt;br /&gt;나의 경우, 젊을 때 이 문제에 대하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고, 오랫동안 제일 &lt;br /&gt;원인론을 믿고 있었다. 그러던 어느 날 내 나이 열여덟이었을 때, 존 스튜어트 &lt;br /&gt;밀의 ‘자서전’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. &lt;br /&gt;&lt;br /&gt;“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치셨다. ‘누가 날 만들었는가?’ 라는 물음에는 &lt;br /&gt;해답이 있을 수 없다. 왜냐하면 그 즉시 ‘누가 야훼를 만들었는가?’라는 보다 &lt;br /&gt;깊은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.” &lt;br /&gt;&lt;br /&gt;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, 아주 단순한 이 구절이 내게 제일 원인론의 오류를 &lt;br /&gt;보여주었다.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야훼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할 &lt;br /&gt;것이고, 어떤 것이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도 야훼처럼 원인없이도 &lt;br /&gt;존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므로 이 이론에는 아무런 타당성이 없다. 이 논리는, &lt;br /&gt;세계는 코끼리 등에 얹혀있고 그 코끼리는 거북이 등에 얹혀있다고 보는 &lt;br /&gt;힌두교도의 관점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. ‘그럼, 그 거북이는?’하고 물었더니 &lt;br /&gt;그 인도인은 ‘우리 주제를 바꿔보는 게 어떻겠소.’ 라고 대답했다. 원인이 &lt;br /&gt;없다면 세상은 생겨나지 못했다고 볼 이유도 없지만 반대로, 세상이 항시 그렇게 &lt;br /&gt;존재해 있었다고 해서 안될 이유도 없다. ‘세상은 시초를 가진다.’고 생각할 &lt;br /&gt;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. 사물에는 시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우리의 &lt;br /&gt;상상력의 빈곤에 다름 아니다. 그러므로 내가 볼 땐 제일 원인에 관한 이론으로 &lt;br /&gt;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자연법칙론 &lt;br /&gt;&lt;br /&gt;다음으로, 자연 법칙에서 끌어낸 아주 흔한 이론이 있다. 이 이론은 특히 아이작 &lt;br /&gt;뉴턴 경과 그의 우주론의 영향을 받으면서 18세기 내내 유행했다. 행성들이 &lt;br /&gt;중력의 법칙에 따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음을 관찰한 사람들은 야훼가 행성들을 &lt;br /&gt;그렇게 특정한 형태로 움직이도록 명령했으며 바로 그 때문에 행성들이 그렇게 &lt;br /&gt;돌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. 이 편리하고 단순한 설명은 중력의 법칙을 더 깊이 &lt;br /&gt;파고들어야 하는 수고를 그들에게서 덜어주었음은 물론이다. 오늘날 우리는 &lt;br /&gt;아인슈타인이 도입한 다소 복잡한 방식으로 중력의 법칙을 설명한다. 나는 이 &lt;br /&gt;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이 해석한 중력의 법칙에 관해 강의하려는 것은 아니다. &lt;br /&gt;그렇게 하자면 또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테니까 말이다. 어쨌거나 지금은, 이유는 &lt;br /&gt;아무도 모르지만 자연은 획일적인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하는 뉴턴식 체계하의 &lt;br /&gt;자연 법칙 따위는 믿지 않게 되었다. 우리는 이제, 과거에 자연 법칙이라고 &lt;br /&gt;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인간의 인습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. 까마득히 깊은 &lt;br /&gt;우주 공간에서도 1야드는 여전히 3피트라는 것을 여러분은 안다. 참으로 놀라운 &lt;br /&gt;사실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을 가리켜 자연 법칙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. &lt;br /&gt;지금까지 자연법칙으로 여겨져 왔던 것 중에는 이런 것들이 너무도 많다. &lt;br /&gt;그에 반해, 원자가 실제로 하는 일에 대해 알아보면 원자들이 법칙에 따르는 &lt;br /&gt;정도가 생각보다 훨씬 낮다는 것, 그리고 우리가 도달하는 법칙들은 그저 우연히 &lt;br /&gt;생겨날 수 있는 것들의 통계적 평균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. 아시는 바와 &lt;br /&gt;같이, 주사위를 던지면 36회에 한번씩 6이 연달아 나오게 된다는 법칙이 있긴 &lt;br /&gt;하지만 우리는 그 법칙이 주사위가 목적에 따라 구른다는 것을 증거한다고 &lt;br /&gt;생각지는 않는다. 그러나 만일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매번 6이 연달아 나온다면 &lt;br /&gt;거기엔 무슨 목적이 작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. 자연 법칙에는 이런 류의 &lt;br /&gt;것들이 매우 많다. 그것은 확률의 법칙에서 생겨나는 것과 같은 통계적 &lt;br /&gt;평균치들이다. 그리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자연법칙의 모든 현상은 과거에 비해 &lt;br /&gt;훨씬 감동이 줄게 되었다. 당장 내일이라도 변할지 모르는 과학의 일시적 상태를 &lt;br /&gt;대변하는 이러한 측면과는 별도로, 자연 법칙들의 존재는 결국 법칙 부여자를 &lt;br /&gt;함축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. 이러한 생각들은 자연 법치과 인간의 법칙을 &lt;br /&gt;혼동한 데서 기인한다. 인간의 법칙은 여러분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할 것을 &lt;br /&gt;지시하는 명령으로서, 여러분은 그대로 행동할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. &lt;br /&gt;그러나 자연 법칙은 사물들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기술한 것으로서 &lt;br /&gt;사물의 실제 움직임을 기술하는 데 지나지 않으므로 사물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&lt;br /&gt;움직이도록 명령하는 자가 반드시 있다고 말할 순 없다. 왜냐하면 그런 존재가 &lt;br /&gt;있다고 가정하는 수간 곧 다음의 의문에 직면하기 때문이다. ‘야훼는 왜 그러한 &lt;br /&gt;자연 법칙들만 만들고 다른 법칙들은 만들지 않았는가?’ 만약에 이것이 야훼 &lt;br /&gt;자신의 기분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일 뿐 다른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결국 법칙의 &lt;br /&gt;지배를 받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뜻이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 법칙의 일관성은 &lt;br /&gt;깨어지고 마는 것이다. 만일 상당수 정통 신학자들이 주장하듯, 야훼는 모든 &lt;br /&gt;법칙을 만듦에 있어 다른 법칙이 아닌 바로 그것들을 만들게 된 이유 - 물론 &lt;br /&gt;최선의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하겠지만 실상을 보라면 그런 것 &lt;br /&gt;같지도 않다 - 가 있었다, 다시 말해 야훼가 만든 법칙들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&lt;br /&gt;본다면, 야훼 자신도 어떤 법칙에 따랐다는 얘기가 되므로 야훼를 중재자로 &lt;br /&gt;끌여들여봤자 아무런 유리할 것도 없게 된다. 결국 법칙은 신성한 칙령 외부에 &lt;br /&gt;그리고 그 이전에 존재한다는 얘기가 되므로 야훼는 별 소용이 없게 된다. &lt;br /&gt;왜냐하면 그는 최종적인 법칙 부여자가 아닌 셈이니까. 한마디로 자연 법칙에 &lt;br /&gt;관한 이러한 이론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힘을 지니지 못한다. 나는 이 &lt;br /&gt;이론들을 검토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, 야훼의 존재를 설명하는 &lt;br /&gt;데 이용되는 이론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성격이 바뀌었다. 처음에 등장했을 때 &lt;br /&gt;그것들은 명백한 오류들을 지식으로 위장한 견고한 이론들이었다. 그러나 현대로 &lt;br /&gt;접어들면서 지적 지지도가 점점 낮아지자 일종의 도덕적 모호함으로 가장하는 &lt;br /&gt;경향이 높아지고 있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목적론 &lt;br /&gt;&lt;br /&gt;다음으로 살펴볼 이론은 목적론이다. 여러분도 다 아는 얘기겠지만, 세상 만물은 &lt;br /&gt;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꼭 맞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이 &lt;br /&gt;상태에서 조금만 달라진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&lt;br /&gt;목적론이다. 이것은 때로 다소 기묘한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. 예를 들어 토끼의 &lt;br /&gt;꼬리가 흰 것은 총 쏘기에 좋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. 목적론을 &lt;br /&gt;응용한 이 같은 해석을 토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의심스럽다. 패러디(parody)하기 &lt;br /&gt;딱 좋은 이론이다. ‘코는 안경쓰기에 알맞도록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’고 하는 &lt;br /&gt;볼테르의 말도 들어보았을 것이다. 이런 류의 패러디는 18세기에는 엉뚱하게 &lt;br /&gt;들렸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. 다윈 이후로 &lt;br /&gt;우리는 생물이 각자의 주위 환경에 적합하게 된 이유에 대해 보다 많이 알게 &lt;br /&gt;되었기 때문이다. 그것은 즉, 환경이 생물에 맞추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&lt;br /&gt;생물이 환경에 맞추어 변해왔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적응의 기본 원리이다. &lt;br /&gt;거기에 목적의 증거 따위는 전혀 없다. &lt;br /&gt;&lt;br /&gt;이 목적론을 살펴보노라면, 온갖 결함들을 지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&lt;br /&gt;세계를 전지전능한 야훼가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최선의 것이라고 믿을 수 &lt;br /&gt;있는지가 놀라울 따름이다. 나는 정말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. 생각해보라, 만일 &lt;br /&gt;여러분에게 전지전능과 수백만 년의 세월을 주면서 세상을 완성시켜보라고 했다면 &lt;br /&gt;고작 공포의 KKK단이나 파시스트 같은 것밖에 만들 수 없었을까? 게다가, 과학의 &lt;br /&gt;일반 법칙을 인정한다면 인간과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적당한 과정을 거쳐 &lt;br /&gt;결국에는 다 멸종될 것이라는 점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. 태양계 몰락의 한 &lt;br /&gt;단계로서 말이다. 몰락의 어느 단계에 이르면 원형질의 생성에 적당한 온도 따위 &lt;br /&gt;조건들이 주어기고 그렇게 해서 태양계 전체의 일생 가운데 잠시 생명이 존재하게 &lt;br /&gt;된다. 우리는 바로 달에서 지구의 예상되는 앞날을 본다. - 죽음, 냉기, &lt;br /&gt;무생명으로 뒤덮인 그 모습 말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그런류의 시각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, 그런 견해를 믿는다면 계속해서 살아갈 &lt;br /&gt;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. 그러나 그런 얘기는 믿지 말기 &lt;br /&gt;바란다. 말도 안돼는 소리들이다. 지금으로부터 수백만 년 후에 일어날 일을 두고 &lt;br /&gt;정말로 심각하게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. 설령 자기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&lt;br /&gt;있다고 생각해도 실상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일 뿐이다. 사람들이 &lt;br /&gt;걱정하는 것은 훨씬 더 현세적인 일, 이를테면 단순한 소화 불량 때문일 수는 &lt;br /&gt;있지만 수백만 년 후에 이 세상에서 일어날 일을 생각하고 정말로 심각하게 &lt;br /&gt;슬퍼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. 그러므로, 생명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&lt;br /&gt;우울한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- 그러나 &lt;br /&gt;이따금,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를 곰곰이 성찰해보노라면 나로선 &lt;br /&gt;그 생각이 차라리 위로에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- 그것 때문에 인생이 &lt;br /&gt;비참해질 것까진 없다고 본다. 그저 여러분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보게 만드는 &lt;br /&gt;정도일 것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신성을 위한 도덕론 &lt;br /&gt;&lt;br /&gt;이제 우리는, 신학자들이 논증 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지적 계보라고 할 수 있는 &lt;br /&gt;것에서 좀더 깊이 들어간 단계에 이르렀다. 다시 말해, 소위 야훼의 존재를 &lt;br /&gt;지지하는 도덕론과 만나게 됐다.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과거 야훼의 존재를 &lt;br /&gt;지지하는 지적 이론에는 세 종류가 있었는데 임마누엘 칸트의 ‘순수 이성 비판’&lt;br /&gt;에 와서 모두 처분되었다. 그러나 칸트는 그러한 이론들을 처분하자마자 새 &lt;br /&gt;이론을 하나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바로 도덕론이며 그는 이 이론을 굳게 확신했다.&lt;br /&gt;사실 칸트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했다. 즉, 지적 차원에서는 회의적이었고 &lt;br /&gt;도덕적 차원에서는 자기 어머니 무릎에서부터 들어온 금언들을 은연중에 믿고 &lt;br /&gt;있었다. 이 대목에서, 정신 분석가들이 강조해 마지않는 사실 하나가 입증된다. &lt;br /&gt;사람에게는 성장 후의 관계보다 유년기의 관계에서 받은 영향이 훨씬 더 크게 &lt;br /&gt;작용한다는 얘기 말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어쨌거나 칸트는 앞서 말한대로, 야훼의 존재를 지지하는 새로운 도덕론을 &lt;br /&gt;창안했으며 그 이론은 다양하게 형태를 바꿔가며 19세기 내내 큰 호응을 받았다. &lt;br /&gt;그의 도덕론에는 온갖 종류의 형태가 있는데 그 중 하나에서는 야훼가 존재하지 &lt;br /&gt;않는다면 옳고 그름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. 옳고 그름 사이에 실제로 차이가 &lt;br /&gt;있든 없든 나로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.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. &lt;br /&gt;나의 관심사는, 옳고 그름의 차이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&lt;br /&gt;의문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. ‘그럼 그 차이는 야훼의 명령 때문에 생기는 &lt;br /&gt;것인가, 그렇지 않은가?’ 만일 야훼의 명령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면 야훼 &lt;br /&gt;자신에게는 옳고 그림이 아무 차이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. 따라서 야훼에게는 &lt;br /&gt;선(善)이라는 말 자체가 아무 뜻 없는 말이 되고 만다. 만일 여러분들이 &lt;br /&gt;신학자들처럼 야훼는 선하다고 말하려면 옳고 그름은 야훼의 명령과는 무관하게 &lt;br /&gt;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. 왜냐하면 야훼 자신이 옳고 그름을 &lt;br /&gt;만들었다는 자명한 사실과는 상관없이 야훼의 명령은 선이며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.&lt;br /&gt;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렇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선, 옳고 그름은 오직 야훼에 &lt;br /&gt;의해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있어 논리적으로 야훼에 앞서 존재한다고 &lt;br /&gt;말할 수 있어야 한다. 물론 각장의 기호에 따라, 보다 우월한 신이 있어 이 &lt;br /&gt;세계를 만든 야훼에게 명령을 내린 거라도 해도 좋고, 우리가 알 고 있는 이 &lt;br /&gt;세계는 사실 신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악마가 만들어낸 것이라도 보는 일부 &lt;br /&gt;그노시스(gnosis)주의자들의 노선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. 나는 후자가 대단히 &lt;br /&gt;그럴싸한 견해라고 종종 생각해보긴 했지만 거기에 대해선 할 말들이 많을 것이고 &lt;br /&gt;나도 지금 그 문제로 시비하고 싶진 않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불의 치유론 &lt;br /&gt;&lt;br /&gt;이번에는 도덕론의 아주 기이한 형태를 하나 다뤄보자. 그것은 야훼의 존재는 이 &lt;br /&gt;세상에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.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&lt;br /&gt;이 한편에는 너무도 큰 불의(不義)가 존재한다. 그리고 선한 자들이 고통 받는 &lt;br /&gt;일도 많고 악한 자들이 융성하는 일도 많아서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괴로운 &lt;br /&gt;일인지조차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. 그러므로 우주 전체에 정의가 존재한다고 &lt;br /&gt;믿기 위해선 이 지구상 삶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 내세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.&lt;br /&gt;따라서 긴 안목에서 결국 정의가 존재하게 하기 위해 야훼는 있어야 하며 천국과 &lt;br /&gt;지옥이 있어야한다고 말한다.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논리다. 만일 여러분이 이 &lt;br /&gt;문제를 과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. ‘결국 나는 이 &lt;br /&gt;세상밖에 모른다. 우주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한다. 그러나 &lt;br /&gt;확률에만 입각해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, 아마도 이 세상이 우주 전체의 평균적 &lt;br /&gt;표본일 것이고 그러니 여기에 불의가 존재한다면 다른 곳들에도 역시 불의가 &lt;br /&gt;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.’ 여러분이 오렌지 상자를 하나 받아서 &lt;br /&gt;열어보았다고 가정해보자. 맨 윗줄 오렌지들이 모조리 상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&lt;br /&gt;때 여러분은 ‘그 밑의 것들은 분명히 싱싱할 것이다. 그래야 불균형이 바로 &lt;br /&gt;잡히니까.’ 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. ‘아마도 상자 전체를 상한 것들로만 채워 &lt;br /&gt;보냈겠군.’ 이라고 말할 건인데, 과학적인 사람이 우주에 관해 주장할 수 있는 &lt;br /&gt;것도 바로 그것이다. 다시 말해, ‘여기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엄청난 불의를 본다.&lt;br /&gt;그렇다고 한다면 정의가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. &lt;br /&gt;따라서 그러한 사실에 근거하는 한,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도덕론이 아닌 부인하는&lt;br /&gt;도덕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.’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설명해온 지적 &lt;br /&gt;이론들이 사람들을 진정으로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건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. &lt;br /&gt;정말로 사람들을 움직여 야훼를 믿도록 만드는 것은 지적 이론 따위가 아니다. &lt;br /&gt;사람들이 야훼를 믿는 것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그래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며 &lt;br /&gt;바로 그것이 주된 이유다. &lt;br /&gt;&lt;br /&gt;그럼 그 다음으로 강력한 이유는 무엇일까? 나는 그것이 안전에 대한 갈망, 즉 &lt;br /&gt;나를 돌봐줄 큰 형님이 계시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한다. 이것은&lt;br /&gt;사람들로 하여금 야훼를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&lt;br /&gt;요인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예수 그리스도의 성격 &lt;br /&gt;&lt;br /&gt;이제부터는, 합리주의자들에 의해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종종 생각되는 &lt;br /&gt;문제에 대해 몇마디 말하고자 한다.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최선, 최현의 &lt;br /&gt;사람이었나 하는 문제 말이다. 여기에는 당연히 누구나 동의할 거라고 일반적으로 &lt;br /&gt;생각한다.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. 물론 나는 예수에게는 내가 &lt;br /&gt;공감할 수 있는 점들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하며, 그 공감의 정도는 기독교인으로 &lt;br /&gt;자처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크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. 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&lt;br /&gt;그와 함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나는 그와 더불어 여느 독실한 &lt;br /&gt;기독교인보다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. 예수가 한 말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이다. &lt;br /&gt;‘악을 대적하지 말라.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내주어라.’ 이것은 &lt;br /&gt;새로운 가르침도 새로운 신조도 아니다. 예수보다 약 5,6백년전에 이미 노자가 &lt;br /&gt;석가가 하신 말씀이다. 그럼, 기독교인들은 진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신조냐 하면 &lt;br /&gt;그것도 아니다. 이 나라의 현 수상(스탠리 볼드윈)을 예로 들어 봅시다. 그가 &lt;br /&gt;독실하기 그지없는 기독교인이라는 데 대해선 나도 전혀 의심하지 않지만 &lt;br /&gt;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에게, 가서 그 사람의 뺨을 때려보라고 권하지는 않겠다. &lt;br /&gt;아마도 여러분은 수상이 성경의 구절을 비유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알게 &lt;br /&gt;될 테지만. &lt;br /&gt;&lt;br /&gt;그런데 내가 볼 때 아주 훌륭한 게 하나 더 있다. ‘심판받지 않으려거든 &lt;br /&gt;심판하지 말라.’는 예수의 말을 기억하실 것이다. 여러분은 잘 알지 못 할 &lt;br /&gt;테지만 한때 기독교 국가들의 법정에서 이 신조가 유행했다. 나는 지금까지 &lt;br /&gt;살아오면서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 판사들을 꽤 많이 알게 되었는데, 자신이 하는 &lt;br /&gt;일이 기독교 신조에 위배된다고 느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. 또한 예수는 &lt;br /&gt;‘네게 구하는 자에게 줄 것이며, 네게서 빌어가고자 하는 자를 외면하지 말라.’&lt;br /&gt;고 했는데 이 말 역시도 훌륭한 신조다. &lt;br /&gt;&lt;br /&gt;좀전에 여러분들의 협회장은 우리가 여기서 정치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&lt;br /&gt;바있지만 나로선 지난번 총선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. 그것은, 네게서 &lt;br /&gt;빌어가려 하는 자를 외면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의 문제를 두고 붙은 &lt;br /&gt;싸움이었으며, 그러니 우리로선 이 나라의 자유당과 보수당이 예수의 가르침에 &lt;br /&gt;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. 당시 그들은 정말이지 &lt;br /&gt;매몰차게 외면했으니까. &lt;br /&gt;&lt;br /&gt;그리고 또 하나 예수의 가르침이 있는데, 내가 볼 땐 아주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&lt;br /&gt;생각하지만 일부 우리의 기독교인 친구들 사이에선 크게 인기있는 것 같지가 않다.&lt;br /&gt;바로, ‘네가 완벽해지고자 한다면 가서,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&lt;br /&gt;주어라.’는 말씀이다. 이것은 대단히 뛰어난 가르침이지만 말한 바와 같이, &lt;br /&gt;그다지 실천되고 있지 못하다. 이 모든 말씀들은 다 좋은 가르침이라도 생각한다. &lt;br /&gt;그러나 살면서 행하기는 다소 어렵다. 당장 나부터도 그 말씀들에 따라 산다고 &lt;br /&gt;공언하지 못한다. 그러나 결국 다 그렇다고해도 기독교인은 경우가 한참 다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예수의 가르침에 담긴 결함들 &lt;br /&gt;&lt;br /&gt;나는 예수가 남긴 교훈들이 훌륭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복음서들에 묘사된 것과 &lt;br /&gt;같은 예소의 최고 지혜나 최고 선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몇가지 사항을 &lt;br /&gt;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. 그러나 여기서 역사적 문제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&lt;br /&gt;점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. 역사적으로 본다면, 예수가 과연 존재했는가부터 &lt;br /&gt;지극히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다 하더라도 우리로선 그에 관해 아는 &lt;br /&gt;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대단히 어려워진다. 따라서 나는 역사적인 문제에 &lt;br /&gt;대해서는 관심이 없다. 나의 관심사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이기 때문에 복음 &lt;br /&gt;기록자의 해석에 따르겠지만, 그 중에는 그다지 현명한 것 같지 않은 대목 &lt;br /&gt;몇군데가 발견된다. 첫째, 예수는 자신이, 당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기 &lt;br /&gt;전에 찬란한 구름 속에서 재림하게 될 것으로 굳게 믿었다. 이것을 증명할 만한 &lt;br /&gt;구절은 대단히 많다. 예를 들어 ‘사람의 아들(구세주)이 올 때까지 너희는 &lt;br /&gt;이스라엘로 넘어가지 못 하리라.’고 예수는 말했다. 도 ‘여기 서 있는 자 중에 &lt;br /&gt;사람의 아들이 그의 왕국으로 들어갈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않을 자가 몇 명 &lt;br /&gt;있다.’고도 하였다. 예수가 그렇게 믿었다고 보여지는 대목은 그밖에도 많다. &lt;br /&gt;예수는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생전에 자신의 재림이 실현되리라고 믿었다. &lt;br /&gt;그의 초창기 추종자들도 그렇게 믿었고 수의 수만은 도덕적 가르침의 기초도 바로 &lt;br /&gt;그것이었다. 예수가 ‘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.’고 한 것이라든지 기타 그와 &lt;br /&gt;유사한 말들을 했을 때는 가까운 시일 내에 재림이 일어날 것이니 현세의 모든 &lt;br /&gt;일상적인 일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. 나는 재림이 &lt;br /&gt;임박했다고 믿었던 기독교일들을 실제 몇 사람 알고 있다. 재림이 정말로 코앞에 &lt;br /&gt;다가왔다고 말해 교인들을 놀라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던 목사도 한사람 있었다. &lt;br /&gt;그러나 교인들은 그 목사가 정원에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안심했다고 &lt;br /&gt;한다.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재림을 진심으로 믿었다. 그들이 정원에 나무 &lt;br /&gt;심는 것과 같은 행위들을 삼간 것은 재림이 임박했다는 믿음을 예수에게서 전해 &lt;br /&gt;받았기 때문이다. 이런 점에서 보면 예수는 분명히 다른 지혜로운 이들만큼 &lt;br /&gt;현명하지 못했으며, 따라서 지고의 현자일 수도 없었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도덕상의 문제 &lt;br /&gt;&lt;br /&gt;이제 도덕적 문제로 넘어가보자. 내가 볼 때 예수의 도덕적 성격에는 대단히 &lt;br /&gt;중대한 결함이 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즉, 그가 지옥을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. &lt;br /&gt;나는 누구든 진정으로 깊은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원한 형벌 따위를 믿을 &lt;br /&gt;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. 복음서에 그려진 대로라면 예수는 분명히 영원한 &lt;br /&gt;형벌을 믿었으며, 자신의 설교에 귀 기울이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보복적인 &lt;br /&gt;분노를 터뜨리는 대목이 수차례 발견된다. 이러한 태도는 평범한 설교자들에게서는&lt;br /&gt;보기 드문 것도 아니지만 훌륭한 존재가 그런다는 것은 어쩐지 품위에 어울리지 &lt;br /&gt;않는다. 이를 테면 소크라테스에게서는 그러한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. 그는 자기 &lt;br /&gt;말에 귀 기울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우 부드럽고 점잖았음 보게 되는데 내 &lt;br /&gt;생각에는 격분하는 것보다는 그쪽이 훨씬 더 성자다운 태도가 아닐까 싶다. &lt;br /&gt;아마도 여러분은 소크라테스가 죽어가면서 한 말이라든지, 자기와 생각을 달리 &lt;br /&gt;하는 사람들에게 늘 했던 말을 기억하실 것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여러분은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보게 된다. ‘너희, 뱀의 무리, 독사의 &lt;br /&gt;자식들아, 너희가 어찌 지옥의 저주를 면하겠느냐?’ 예수가 자신의 설교를 &lt;br /&gt;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한 말인데, 내가 볼 땐 결코 좋은 어조가 아니다. &lt;br /&gt;복음서에는 지옥을 언급하는 이런 말이 대단히 많다. ‘누구든 성령을 욕되게 &lt;br /&gt;말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용서받지 못하리라.’ 이 구절은 이 &lt;br /&gt;세상에 말할 수 없는 많은 불행을 야기했다.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니 모두 &lt;br /&gt;성령에 대해 죄를 지은 것 같아 모두들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&lt;br /&gt;못하겠구나 생각하게 된 것이다. 내 생각으로는 진실로 자비로운 성품을 지닌 &lt;br /&gt;사람이라면 결코 그와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이 세상에 심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예수는 또 이렇게 말한다. &lt;br /&gt;&lt;br /&gt;‘사람의 아들이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그의 왕국에서 거역하는 자와 부정하는 &lt;br /&gt;자를 모두 거두어 불가마에 던져버리니, 거기서 통곡하고 이를 갈게 되리라.’ &lt;br /&gt;&lt;br /&gt;통곡하고 이를 간다는 대목을 예수는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계속해서 말하고 &lt;br /&gt;있는데 이 부분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통곡하고 이를 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어떤 &lt;br /&gt;쾌감을 느낀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. 그게 아니라면 그처럼 자주 &lt;br /&gt;언급될 리가 없다. 다음으로 여러분은 양과 염소에 관한 대목을 기억할 것이다. &lt;br /&gt;재림이 일어날 때 양과 염소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얘기하면서 예수는 &lt;br /&gt;염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. &lt;br /&gt;&lt;br /&gt;‘너 저주받은 자여,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.’ 계속해서 &lt;br /&gt;‘이들을 영원한 불 속에 사라지게 하라.’고 한다. 이어 다시 이렇게 말한다. &lt;br /&gt;‘너의 한손이 내 뜻을 거역하면 그 손을 끊을지니, 병신이 되어 생명으로 가는 &lt;br /&gt;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으로,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 &lt;br /&gt;나으리라. 거기에는 언제나 구더기가 들끓고 불이 꺼지지 않느니라.’ 이 얘기 &lt;br /&gt;역시 예수는 계속해서 되풀이한다. 나는 죄에 대한 형벌은 지옥불로 다스린다는 &lt;br /&gt;이 모든 교리가 잔인한 교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. 그것은 세상에 잔인성을 &lt;br /&gt;심고, 대를 잇는 잔인한 고문을 부여한 교리다. 그렇게 된 원인을 따져볼 때, &lt;br /&gt;예수 기록자들이 묘사한 대로라면 분명 복음서의 예수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&lt;br /&gt;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. &lt;br /&gt;&lt;br /&gt;중요성은 다소 덜하지만 그밖에 다른 예들도 있다. 이를테면 가다렌(Gadarene) &lt;br /&gt;지방의 돼지떼 관한 대목에서는 참으로 비정하게도 마귀를 돼지들 속에 &lt;br /&gt;들어가게하여 온 돼지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 속에 빠져버렸다. 여기서 &lt;br /&gt;여러분은 예수가 전능자였다는 것, 따라서 마귀들을 그냥 조용히 사라지게 만들 &lt;br /&gt;수도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. 그러나 그는 마귀들을 돼지들 속에 &lt;br /&gt;들여보냈다. 이번에는, 들을 때마다 늘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, 무화과 &lt;br /&gt;나무에 관한 희한한 얘기가 있다. 여러분도 잘 아는 얘기지만 그 내막은 다음과 &lt;br /&gt;같다. &lt;br /&gt;&lt;br /&gt;“시장기를 느낀 예수께서 멀리 서 있는 이파리 무성한 무화과를 보시고 먹을 &lt;br /&gt;것이 있을까 하고 그리고 가셨다. 무화과수에 가보니 아직 열매 맺을 때가 되지 &lt;br /&gt;않아 잎사귀 외엔 아무것도 없음을 아시게 되었다.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시고 &lt;br /&gt;나무에 이르기를 ‘지금부터 영원히 아무도 네 열매를 먹지 못 하리라.’ &lt;br /&gt;하시니... 베드로가 예수께 말씀드리기를 ‘주여, 주께서 저주하신 저 무화과수를 &lt;br /&gt;보소서, 시들어버렸나이다.’ 라고 하였다.” &lt;br /&gt;&lt;br /&gt;참으로 이상한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다. 무화과가 열릴 철도 아닌데 나무를 &lt;br /&gt;탓하다니 말이다. 나로서는 예수가 지혜로 보나 도덕성으로 보나 역사에 남은 &lt;br /&gt;다른 사람들만한 높은 위치에 있다고 도저히 볼 수 없다. 그런 점들에 있어서는 &lt;br /&gt;석가나 소크라테스를 예수 위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감정적 요소 &lt;br /&gt;&lt;br /&gt;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사람들이 종교를 받아들이는 진정한 이유는 이론과는 &lt;br /&gt;아무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. 사람들은 정서적 이유 때문에 종교를 받아들이고 &lt;br /&gt;있다. 종교는 사람을 덕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종교를 공격하는 것은 아주 나쁜 &lt;br /&gt;짓이라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는다. 나도 그런 얘길 듣는다. 그러나 나는 그렇게 &lt;br /&gt;생가하진 않는다. 여러분은 이 문제를 패러디한 사뮤엘 버틀러(Samuel Butler)의 &lt;br /&gt;‘다시 찾은 에레혼’이란 책을 물론 알 것이다. 히그스라는 사람이 에레혼이라는 &lt;br /&gt;어느 먼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. 거기서 얼마간 지내던 그는 기구를 타고 빠져 &lt;br /&gt;나온다. 이십 년이 지난 후 그 나라를 다시 찾은 그는 자신을 태양의 아들로 &lt;br /&gt;숭배하는 새로운 종교가 퍼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여기서는 그가 하늘로 올라간 &lt;br /&gt;것으로 전해지고 있다. 때마침 그의 승천 기념제가 벌어지려고 하는 순간 그는 &lt;br /&gt;행키와 팽키라는 교수들이 서로 얘기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. 자신들은 인간 &lt;br /&gt;히그스에겐 눈길도 주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는 얘기였다. 그런데 그 &lt;br /&gt;사람들은 다름아닌 태양의 아들교의 고위 사제들이다. 격분한 히그스는 그들에게 &lt;br /&gt;가 말한다. ‘나는 이 엉터리 수작을 모두 폭로하고 그들의 신은 바로 나, &lt;br /&gt;인간 히그스이며 나는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거라고 에레혼 사람들에게 &lt;br /&gt;밝히겠다.’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. ‘그래서는 안됩니다.’ 이 나라의 모든 &lt;br /&gt;도덕은 이 신화를 중심으로 짜여 있어요. 만일 당신이 하늘로 올라간 게 아니라는 &lt;br /&gt;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모두 사악해질 겁니다.‘ 결국 그는 그들의 얘기에 &lt;br /&gt;설득당한 채 조용하게 빠져나온다. &lt;br /&gt;&lt;br /&gt;바로 이 점이다. 기독교에 매달리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사악해질 것이랑 얘기 &lt;br /&gt;말이다. 내가 보기엔 기독교에 매달려온 사람들이 대부분 극악했다. 여러분은 이 &lt;br /&gt;기묘한 사실, 즉 어떤 시대든 종교가 극렬할수록, 독단적인 믿음이 깊을수록, &lt;br /&gt;잔인성도 더 커졌고 사태고 악화되었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. 누구나 기독교를 &lt;br /&gt;철저히 믿었던 소위 신앙의 시대에는 고문 기구를 갖춘 종교 재판소가 &lt;br /&gt;존재했으며, 수백만의 불운한 여인들이 마녀로 몰려 불태워졌다. 종교의 이름으로 &lt;br /&gt;온갖 종류의 잔인한 폭력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것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여러분도 세상을 둘러보면 알게 될 것이다. 인간의 정서적 발전, 형법의 개선, &lt;br /&gt;전쟁의 감소, 유색 인종에 대한 처우 개선, 노예 제도의 완화를 포함해 이 &lt;br /&gt;세계에서 단 한 걸음이라도 도덕적 발전이 이뤄질 때마다 세계적으로 조직화된 &lt;br /&gt;교회 세력의 끈덕진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던 경구는 한 번도 없었다. 교회들로 &lt;br /&gt;조직화된 기독교는 이 세계의 도덕적 발전에 가장 큰 적이 되어 왔으며 지금 &lt;br /&gt;현재도 그러하다는 것을 나는 긴 심사숙고 끝에 말하는 바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교회는 어떤 방식으로 진보를 저해해 왔는가 &lt;br /&gt;&lt;br /&gt;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내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 지도 &lt;br /&gt;모르겠다. 그러나 나는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. 한 가지 사실을 들어보자. &lt;br /&gt;이 얘길 들으면 여러분도 수긍하게 될 것이다.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교회는 &lt;br /&gt;우리로 하여금 유쾌하지 못한 사실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. 오늘날 &lt;br /&gt;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한 순결한 처녀가 매독 환자에게 시집을 갔다고 &lt;br /&gt;가정해보다. 이런 경우 가톨릭 교회는 이렇게 말한다.‘이는 파기할 수 없는 &lt;br /&gt;신성한 맹세이니 너희는 평생을 같이 살아야한다.’ 게다가 이 여인은 매독에 &lt;br /&gt;중독되어 태어날 아이를 낙태하고 싶어도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게끔 되어있다. &lt;br /&gt;이런 것이 바로 가톨릭 교회가 하는 말이다. 나는 그것을 악마적 잔인성에 &lt;br /&gt;다름아니라고 단언하는데, 타고난 동정심이 독단으로 깡그리 포장된 사람이 &lt;br /&gt;아니라면, 도덕적 본성이 모든 고통의 감각 앞에 완전히 마비된 사람이 아니라면, &lt;br /&gt;그러한 혼인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올바르고 적절하다고 주장할 사람은 결코 &lt;br /&gt;아무도 없을 것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위의 얘기는 일례에 불과하다. 현재 이 순간에도 교회는 자칭 도덕이라는 것을 &lt;br /&gt;강요함으로써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게 과다하고 불필요한 &lt;br /&gt;고통을 가하고 있다.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, 교회는 인간의 행복과는 &lt;br /&gt;아무 관계도 없는 편협한 행동 규범을 정해 놓고, 그것을 도덕이라고 하기 때문에 &lt;br /&gt;교회의 주요 역할은 여전히, 세상의 고통을 덜어주는 모든 방면의 진보와 개선에 &lt;br /&gt;맞서는 데 머문다. 만일 여러분이 이러저러한 것은 인간의 행복에 도움이 되므로 &lt;br /&gt;그렇게 행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들은 인간의 행복과 그 문제는 아무 관계도 &lt;br /&gt;없다고 생각한다. ‘인간의 행복이 도덕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? 도덕의 목적은 &lt;br /&gt;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.’ 고 말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종교의 기반은 두려움이다 &lt;br /&gt;&lt;br /&gt;종교의 일차적이고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. 그것은 &lt;br /&gt;한편으로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고,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, &lt;br /&gt;여러분이 온갖 곤경이나 반목에 처했을 때 여러분 편이 되어줄 큰 형님이 있다고 &lt;br /&gt;느끼고 싶은 갈망이기도 한다. 두려움은 그 모든 것의 기초다. 신비한 것에 대한 &lt;br /&gt;두려움, 패배에 대한 두려움, 죽음의 두려움...... 두려움은 잔인함의 어버이다. &lt;br /&gt;따라서 잔인함과 종교가 나란히 손잡고 간다고 해서 놀랄 것은 전혀 없다. &lt;br /&gt;이 세계를 사는 우리는 과학의 도움으로 이제야 사물을 좀 이해했고 어느 정도 &lt;br /&gt;정복할 수 있게 됐다. 그동안 과학이 기독교와 교회에 맞서, 또한 모든 낡은 &lt;br /&gt;교훈에 맞서 한 걺 한걸음씩 어렵사리 전진해 온 덕분이다. 인류는 세세손손 그 &lt;br /&gt;오랜 세월 비굴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으나 과학은 우리가 그러한 두려움을 &lt;br /&gt;극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. 과학은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. 그리고 나는 바로 &lt;br /&gt;우리의 마음도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본다. 이제는 더 이상 가상의 후원자를 &lt;br /&gt;찾아 두리번거리지 말고, 하늘에 있는 후원자를 만들어내지 말고, 여기 땅에서 &lt;br /&gt;우리 자신의 힘에 의지해, 이 세상을 지난날 오랜 세월 교회가 만들어 온 그런 &lt;br /&gt;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 적합한 곳으로 만들자고 말이다. 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&lt;br /&gt;우리의 할일 &lt;br /&gt;&lt;br /&gt;우리는 우리 자신의 발로 서서 공명정대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. 세상의 &lt;br /&gt;선한 구석, 악한 구석, 아름다운 것들과 추한 것들.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되 &lt;br /&gt;두려워하지는 말자. 세상에서 오는 공포감에 비굴하게 굴복하고 말 것이 아니라 &lt;br /&gt;지성으로 세상을 정복하자. 신에 대한 모든 관념은 동양의 고대적 전제주의에서 &lt;br /&gt;나왔다. 자유인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. 교회 사람들이 &lt;br /&gt;스스로를 비하하며 끔찍한 죄인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&lt;br /&gt;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 저럴 수 있을까 경멸감마저 든다. 우리는 굳건히 서서 이&lt;br /&gt;세계를 진솔하게 직시해야한다. 있는 힘을 다해 세상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어야 &lt;br /&gt;한다. 그리고 비록 바라던 만큼 되지 않을 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&lt;br /&gt;만들어온 세상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.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지식과 온정과 &lt;br /&gt;용기가 필요하다.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, 혹은 오래전에 무식한 사람들이 뱉어 &lt;br /&gt;놓은 말들로 자유로는 지성에 족쇄를 채우는 짓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. &lt;br /&gt;두려움 없는 직시와 자유로운 지성이 요구된다. 죽어버린 과거만 돌아보고 있을 &lt;br /&gt;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필요하다. 그러면 우리의 지성이 창조할 미래가 &lt;br /&gt;죽은 과거를 훨씬 능가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&lt;div class="blogger-post-footer"&gt;&lt;img width='1' height='1' src='https://blogger.googleusercontent.com/tracker/2133109285896903994-3165593019469738604?l=jaycho-textcube.blogspot.com' alt='' /&gt;&lt;/div&gt;</content><link rel='replies' type='application/atom+xml' href='http://jaycho-textcube.blogspot.com/feeds/3165593019469738604/comments/default' title='댓글'/><link rel='replies' type='text/html' href='http://jaycho-textcube.blogspot.com/2010/05/%EB%82%98%EB%8A%94-%EC%99%9C-%EA%B8%B0%EB%8F%85%EA%B5%90%EC%9D%B8%EC%9D%B4-%EC%95%84%EB%8B%8C%EA%B0%80-russell.html#comment-form' title='0개의 덧글'/><link rel='edit' type='application/atom+xml' href='http://www.blogger.com/feeds/2133109285896903994/posts/default/3165593019469738604'/><link rel='self' type='application/atom+xml' href='http://www.blogger.com/feeds/2133109285896903994/posts/default/3165593019469738604'/><link rel='alternate' type='text/html' 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